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개발자로서 현장에서 일하면서 새로 접하는 기술들이나 알게된 정보 등을 정리하기 위한 블로그입니다. 운 좋게 미국에서 큰 회사들의 프로젝트에서 컬설턴트로 일하고 있어서 새로운 기술들을 접할 기회가 많이 있습니다. 미국의 IT 프로젝트에서 사용되는 툴들에 대해 많은 분들과 정보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솔웅

최근에 받은 트랙백

글 보관함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기사를 읽게 됐어요.

한국 교육과정 평가원에서 교과서에 실린 신영복 선생의 약력이 너무 길다고 줄이라고 했다죠? -> 여기

보니까 별로 길지도 않더만...

기사보니까 다른 사람들 약력과 비슷하다고 그러고...


얼마전엔 도종환 시인의 시를 교과서에서 빼려고 하더니만...


MB 정권은 하는 꼬라지가 너무 유치하군요.


신영복 선생의 책은 내가 대학 다닐 때 나온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나 '나무야 나무야' 정도만 알고 있어요.

그것도 읽은건 아니고 그냥 서점가서 띄엄띄엄 눈에 띄는 부분만 읽었었죠.

(그땐 서점가서 잠깐 쉬면서 몇장 읽고 덮어버린 책들이 참 많았어요.)


오늘 이 기사 덕분에 교과서에 실린 신영복 선생의 '어리석은 자의 우직함이 세상을 조금씩 바꿔 갑니다.'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이 있는지도 몰랐거든요.)


잠시 잔잔한 감동과 삶에 대한 성찰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이 글을 복사해 넣고 기회 되면 때때로 읽고 되새겨야 겠어요.





어리석은 자의 우직함이 세상을 조금씩 바꿔 갑니다.  


오늘은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에 있는 온달 산성에서 엽서를 띄웁니다.

이 곳 온달 산성은 둘레가 683미터에 불과한 작은 산성입니다. 그러나 이 산성은 사면이 깎아지른 산봉우리를 테를 메우듯 두르고 있어서, 멀리서 바라보면 흡사 머리에 수건을 동여맨 투사와 같습니다. 결연한 의지가 풍겨 오는 책성(柵城)입니다. 그래서 쉽게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성이었습니다. 다만, 마을 쪽으로 앞섶을 조심스레 열어 산성에 이르는 길을 내주고 있었습니다. 산 중턱에 이르면 사모정(思慕亭)이라는 작은 정자가 있었습니다. 전사한 온달 장군의 관이 땅에서 떨어지지 않자, 평강 공주가 달려와 눈물로 달래어 모셔 간 자리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산성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평강 공주를 만나는 자리입니다. 나는 사모정에서 나머지 산성까지의 길을 평강 공주와 함께 올라갔습니다.

아래로는 남한강을 배수의 진으로 하고, 멀리 소백 산맥을 호시(虎視)하고 있는 온달 산성은 유사시에 백성을 보호해 주는 성이 아니라, 신라에 빼앗긴 땅을 회복하기 위한 전초 기지였음을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망루가 없어도 적병의 움직임이 한눈에 내려다보였습니다. 조령과 죽령 서쪽 땅을 되찾기 전에는 다시 고국에 돌아오지 않겠다고 한 온달의 결의가 지금도 느껴집니다. 나는 소백 산맥을 바라보다 문득 신라의 삼국 통일을 못마땅해하던 당신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하나가 되는 것은 더 커지는 것이라는 당신의 말을 생각하면, 대동강 이북의 땅을 당나라에 내주기로 하고 이룩한 통일은 더 작아진 것이라는 점에서, 통일이 아니라 광활한 요동 벌판의 상실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상실감은 온달과 평강 공주의 애절한 사랑의 이야기와 더불어 이 산성을 찾은 나를 매우 씁쓸하게 합니다.

온달과 평강 공주의 이야기는, 당시의 사회적, 경제적 변화의 과정에서 부유해진 평민 계층이 신분 상승을 할 수 있었던 사회 변동기였다는 사료(史料)로 거론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바보 온달’이라는 별명도 사실은 온달의 미천한 출신에 대한 지배 계층의 경멸과 경계심이 만들어 낸 이름이라고 분석되기도 합니다.

나는 수많은 사람이 오랜 세월에 걸쳐서 함께 만들어 전해 온 온달 장군과 평강 공주의 이야기를 믿습니다. 이 이야기는 다른 어떠한 실증적 사실(史實)보다도 당시의 정서를 더 정확하게 담아 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완고한 신분의 벽을 뛰어넘어 미천한 출신의 바보 온달을 선택한 평강 공주의 결단과, 드디어 용맹한 장수로 일어서게 한 평강 공주의 주체적 삶에는 민중의 소망과 언어가 담겨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온달 설화가 당대 사회의 이념에 매몰된 한 농촌 청년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 까닭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가장 위대한 가능성은 이처럼 과거를 뛰어넘고, 사회의 벽을 뛰어넘고, 드디어 자기를 뛰어넘는 비약에 있습니다.

나는 평강 공주와 함께 온달 산성을 걷는 동안 내내 ‘능력 있고 편하게 해 줄 사람’을 찾는 당신이 생각났습니다.

‘신데렐라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당신이 안타까웠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평가되는 능력이란 인간적 품성이 도외시된 ‘경제적 능력’입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낙오와 좌절 이후에 얻을 수 있는 것으로, 한 마디로 말해 숨겨진 칼처럼 매우 비정한 것입니다. 그러한 능력의 품 속에 안주하려는 우리의 소망이 과연 어떤 실상을 가지는 것인지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당신은 기억할 것입니다. 세상 사람을 현명한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당신이 먼저 말했습니다. 현명한 사람은 자기를 세상에 잘 맞추는 사람인 반면에, 어리석은 사람은 그야말로 어리석게도 세상을 자기에게 맞추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세상은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 때문에 조금씩 더 나은 것으로 변화해 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직한 어리석음, 그것이 곧 지혜와 현명함의 바탕이고 내용입니다.

‘편안함’, 그것도 경계해야 할 대상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편안함은 흐르지 않는 강물이기 때문입니다. ‘불편함’은 흐르는 강물입니다. 흐르는 강물은 수많은 소리와 풍경을 그 속에 담고 있는 추억의 물이며, 어딘가를 희망하는 잠들지 않는 물입니다.

당신은 평강 공주와 삶이 남편의 입신(立身)이라는 가부장적 한계를 뛰어넘지 못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만, 산다는 것은 살리는 것입니다. 살림(生)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자신이 공주가 아니기 때문에 평강 공주가 될 수 없다고 하지만, 살림이란 ‘뜻의 살림’입니다. 세속적 성취와는 상관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나는 평강 공주의 이야기는 한 여인의 사랑의 메시지가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은 ‘삶의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당신의 언젠가 산성에 오기를 바랍니다. 남한강 푸른 물굽이가 천 년 세월을 변함없이 감돌아 흐르는 이 산성에서 평강 공주와 만나기를 바랍니다.


반응형

Comment